책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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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2012,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2012, 김연수) > – 달리기, 지금, 순간 그리고 경험. http://flyingneko.egloos.com/4088123 호흡이 짧은 글은 여전히 낯설다. 산문집이라 소제목 아래 글이 두어 장에서 그친다. 초반부에는 짧은 글에 담겨 있는 생각을 읽어내느라 가쁜 숨을 들이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처음 접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이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쁜 숨이 안정될 때 즈음, 책 <지지 않는다는 말>을 관통하고 있는 단어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달리기. 지금. 순간. 경험. (+ 40대)   <지지 않는다는 말>의 부제를 ‘달리기 예찬‘으로 붙여도 무방할 만큼, 그의 생각과 글에 달리기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달리기는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은유가 아닌 진짜 두 발로 달리는 것이다. 달리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고통과 마주하며, 순간을 경험한다. 일주일에 얼마 간을 뛰겠다는 목표로 무리하게 달리다 생긴 족저근막염으로 내가하지 못한 일이 아닌 해낸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든가, 겨울의 눈을 보며 달리기를 못할 걱정에 빠졌다가 있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미리 만드는 어른들의 습관을 슬며시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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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2015,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2015, 유시민) > – 글쓰기라는 축복, 잘 쓰기 위한 잘 살기 http://flyingneko.egloos.com/4085987 그는 글을 참 잘 쓴다. 까다로운 문장이 없고 술술 읽힌다. 글 안에 담긴 생각은 쉽지 않은데, 쉽게 말로 풀어 듣는 것 같다. 이것이 그의 글쓰기 비법 중 하나다. 쉽게 읽히는 글, 담백한 문장, 그 속의 논리. 늘 그렇듯 글을 잘 쓰기 위한 왕도는 없고, 많이 읽고 쓰는 수 밖에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에, 스스로 서문에 써둔 것처럼 자랑도 꽤 섞여 있다. 그래서 글은 어떻게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은 채 1/3 지점에 다다르면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의 기로에 선다.   책장을 조금 더 넘긴 후부터는 끝까지 단숨에 읽었다. 다독다작이라는 뻔한 이야기의 반복 대신, 왜 많이 읽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독해력이 ‘모든 지적 활동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것과 모국어를 제대로 알고 쓸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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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2005,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2005, 알랭 드 보통)> – 보통의 연애 감정 설명서 http://flyingneko.egloos.com/4075576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을 때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더러 눈에 걸리는 번역체 문장을 차치하고, 곱씹어볼 거리가 많다. 보통이 바라본 연애와 사랑이 유별나거나 특별한 구석이 있다기보다 정말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읽으며 나를 더하고 빼면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느려졌다.   <우리는 사랑일까>는 보통의 사랑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여자 주인공인 앨리스의 눈을 통해 바라본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담았다. ‘나‘를 화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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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발견 (2014, 곽정은)

<혼자의 발견 (2014, 곽정은)> – 완결되지 않은 문장의 일기장 http://flyingneko.egloos.com/4062608 글과 문장을 완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좋은 생각을 글로 옮겨 놓기만 해서는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 길이의 장단을 떠나 하나의 문장을 완결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의 진면목은 어려운 생각을 어렵지 않은 단어로, 복잡한 생각을 단순한 구조로 표현한 문장의 시작과 끝에서 발휘된다.   JTBC <마녀사냥> 출연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곽정은의 신작 <혼자의 발견>의 책장을 넘기는 내내 완결되지 않은 문장이 거슬린다. 완결되지 않은 문장과 생각들이 여기저기 떠돈다. 밥을 먹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떠오른 것들을 냅킨에 휘갈겨 쓴 것 같다. 개인 블로그나 SNS였다면 눈여겨볼만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나 값을 치르고 구매한 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책을 펴내고 서점에서 구매하게끔 하는 작가라면 독자가 낸 ‘값‘과 그들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독자를 그릇된 기대로 이끈다. 외로움과 마주하고 사색하며 쓴 글이라는 느낌을 주는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은 오히려 그녀의 전공인 이성관계가 주로 언급된다. 차라리 ‘관계의 발견‘이라던가, 그런 류의 제목이었다면 실망이 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성관계와 참으로 많은 것들을 결부시키는 글들은 쉽게 읽히지만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투철한 직업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를 이분법적 시각은 공감을 사기보다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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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4,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 (2014, 허지웅) http://flyingneko.egloos.com/4048629 글쓰기를 싫어했다. 책을 좋아하고 언어에 관심이 많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보니 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에 빠지게 되었다. 보고 나면 잊혀지고 증발해버리는 생각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글쓰기를, 고심을 거듭한 끝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둥지를 틀게 된 이글루스를 돌아다니며 허지웅의 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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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Big Sleep, 1939, 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 (Big Sleep, 1939, 레이먼드 챈들러) http://flyingneko.egloos.com/4047183 ※ 하드보일드(hard-boiled) 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의 형용사이지만, 계란을 완숙하면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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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록영화탐구생활

코엔 형제 (2) – 아리조나 유괴 사건 (Raising Arizona, 1987)

[코엔 형제] (2) 거친 가족 코미디 <아리조나 유괴 사건(Raising Arizona, 1987)>  http://flyingneko.egloos.com/3794869 넋이 나간 표정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스타킹을 반쯤 뒤집어 쓴 채 총알 사이를 뛴다. 방긋 웃는 아기를 옆에 태운 화가 잔뜩 난아내 홀리 헌터는 밤거리를 질주하다 니콜라스 케이지를 차에 태운다. 역성을 내며 운전하는 아내와 언쟁하면서도 길을 알려주고 문을 열어 떨어뜨린 기저귀를 줍는다. 넋 나간 니콜라스 케이지만큼 영화를 보다 보면 넋이 나간다. 탈옥수 남편과 경찰 아내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입양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는데 마침 지역사업가에게서 다섯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뉴스를 접한다. 한 명쯤은 우리가 데려와도 괜찮을 거라며 부부는 유괴를 감행하고 이를 쫓고 쫓기는 과정을 그렸다.  사실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유괴하는 부부나 현상금을 노린 탈옥수, 현상금 사냥꾼,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용주와 같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설정은 매우 거칠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덜떨어진 표정과 행동, 어떤 상황에서도 해맑게 웃는 아기가 거부감을 줄인다. (하긴, 요즘의 미국식 코미디 영화에 비하면 그리 거칠다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코엔 형제의 두 번째 영화이자 첫 상업 영화였지만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형제는 모든 숏들을 사전에 꼼꼼하게 짰다고 한다. 우연처럼 보이는 장면들조차 즉흥적으로 연출된 것은 없다고 하니 놀랍다. 이전 작품에서 긴박감을 조성하기 위해 활용된 카메라워크는 <아리조나 유괴 사건>에서 아기를 맞이하는 설렘과 긴장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같은 숏을 여러 번 활용해 반복된 수감 생활을 표현하고, 같은 노래를 다른 분위기로 여러 번 활용한 것도 상황을 표현하는 데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예산을 줄이는 데 기여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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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2011, 빔 벤더스)

한번은,(2011, 빔 벤더스)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에서 느껴지는 그의 따뜻한 시선 http://flyingneko.egloos.com/3761355 셔터를 누르는 순간, 순간은 영원이 되고 영원한 시간은 사진 속에 봉인된다.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말처럼 셔터를 누른 그 순간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셔터를 너무 헤프게 누르고 있지는 않냐는 생각이 스치는 그 순간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몇몇 거장 감독으로 꼽히는 그의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너무 들어 내용도 알 것 같은 제목의 영화 중 사실 본 것은 한 편도 없다. 그의 최근작인 <팔레르모 슈팅(Palermo Shooting, 2008)>이 유일하다. 우연히도, 이 책으로 유명 사진가가 만나는 렌즈 너머 이야기를 다룬 <팔레르모 슈팅>을 찍은 빔 벤더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는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는, 순간과 영원, 사진의 상관관계에 시선과 관점을 더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양방향이다. 사냥꾼이 총을 쏠 때 총알이 앞으로 나가면서 그 반동을 느끼듯, 사진가 역시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반동을 느끼게 된다. 그 반동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흔들림이 아니라 ‘셔터를 누른 뒤 어느 정도 가시화 되는 사진가의 자화상에 해당한다’고 한다. 사진은 결국 그 사진을 찍는 사진가의 관점과 태도가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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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2011, 미야베 미유키)

<R.P.G.(2011, 미야베 미유키)> – 가상 세계에서의 가족 놀이, 그리고 관계에 대한 단상 http://flyingneko.egloos.com/3736335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대표 작가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 전작 <모방범>과 <낙원>을 꽤 재미있게 읽어 신작 역시 두번 생각할 것 없이 집어 들었다. <R.P.G.>,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본인 스스로가 덧붙인 것처럼 단행본으로 쓰기에는 짧고 중,단편집에 넣기에도 애매한 이야기라 사건이나 소재의 규모가 전작 같지 않다. 그래도 규모나 치밀한 구성 외에도 미야베 미유키 작품의 매력은 중간 중간 시선을 사로 잡는 글귀들에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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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2011, 정유정)

<7년의 밤 (2011, 정유정)> – 오래간만에 활자로 느낀 스릴러의 소용돌이 http://flyingneko.egloos.com/3729594 누구나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나만 해도 그렇다. 부인하고 싶지만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한 혹은 박탈한 범죄자의 자식이나 가족들에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보통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이들의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그들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그들도 모르는 지극히 낮은 가능성의 위험도 가급적 피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 강도가 개개인마다 다를지도 모르고, 개인 대 개인으로 대면한다면 약간의 동정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언론이 다루기 시작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피해자일지도 모르는 그들에게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이 붙게 된다.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신분을 숨긴 채 들키지 않을까 몸을 낮추고 살다가도 누군가 가져온 신문 기사 하나에 또 다시 떠날 수 밖에 없는, 환영 받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서원’은 살인범의 아들이다. 열두 살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이 된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지만 언제나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된다. 상속받은 재산을 양육비로 갖고도 두 번 이상 그를 돌보지 않으려고 해 결국 서원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마지막 희망을 품고 건 ‘아저씨’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아저씨’ 승환은 서원의 아버지(현수)의 부하직원이었으며, 사택에서 서원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소설은 현수가 살인마가 되기까지, 그 사건을 둘러싼 죽어버린 세령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령호를 둘러싼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었다. <고백>(미나토 가나에)이나 <천사의 나이프>(아쿠마루 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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