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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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 앤 짐 (Jules Et Jim, 1961)

[프랑소와 트뤼포 전작 회고전] 쥴 앤 짐 (Jules Et Jim, 1961)  flyingneko.egloos.com/3854477  때는 1912년, 우연한 기회로 쥴과 짐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파리를 누빈다. 문학을 논할 때도, 여자를 만날 때도, 복싱을 할 때도 떨어지지 않던 그들 앞에 카트린이 나타나고, 카트린에게 한 눈에 반한 쥴은 짐에게 그녀와 결혼할 것이라고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밝힌다. 쥴과 카트린은 결혼식을 올리지만 이내 전쟁이 발발해 쥴은 독일군 진영에서, 짐은 프랑스군 진영에서 참전하며 서로를 죽이지 않기를 기도하고, 전쟁이 끝난 후 연락이 닿자 짐은 쥴과 카트린이 살고 있는 전원 주택을 찾는다. 그 전원주택에서 파리 근교로 오기까지 카트린은 짐과 쥴 (+알베트) 사이에서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질투하며, 그들의 관계는 연인과 부부, 친구 사이를 넘나든다. 이 영화의 제목이 ‘쥴과 짐, 카트린’이 아니라 <쥴 앤 짐>인데서, 이 영화가 삼각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카트린과 짐이 갖는 여러 관계들과는 달리, 쥴과 짐의 관계는 어떤 일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갈등은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들을 오가는 카트린을 두고도 그들의 우정은 여전하다. 카트린의 곁을 지켜달라는 부탁에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게 되면서도, 그들의 감정을 존중해주고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 육체적으로는 이성을 향해 있지만 마음은 둘을 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덕분에 과하게 자유를 누리는 카트린에 쏟을 비난이 자리를 잡지 못한다. 전쟁을 사이에 두고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지는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무거움을 더해간다. 젊고 발랄했던 그들이 철교를 달리던 장면이 할말을 찾지 못해 서먹해 하는 식탁에서 자동차 안으로 이동해가는 과정에서 자유롭던 그들 역시 세월의 흐름 앞에서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착하지 못하고 도망치기만 하던 카트린의 마지막 선택은 세월 앞에서의 속수무책인 그녀의 무력감과 그리움, 그리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의 분출이 정점에 다다랐던 탓이 아닐까. 쥴과 짐의 우정과 그들이 가지는 다양한 관계를 이야기한 작가주의 영화의 대표작인 <쥴과 짐>에서는 많은 서사가 빠른 템포로 지나가고, 시대적 배경이나 흐름을 나타내는 데 다양한 기법이 활용된다. 등장인물 간의 감정 역시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또 사라지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인물들이 나누는 다른 감정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지나가는 장면들 속에서 인물들의 고뇌가 그리 깊지 않고, 영화의 메시지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 것 같다. 결국 카트린의 윤리 관념이나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노력하기보다는 중간중간 모차르트를 닮은 쥴의 사진이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다가 지나쳐 버린다는 내레이션과 화면과 같이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연출과 감정을 따라 (웃고) 즐기면 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사적으로는 그 이상의 연구와 감상이 필요하고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고전 영화를 대하고, 특히 감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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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 인류의 불안과 호기심이라는 동전의 양면 flyingneko.egloos.com/3851937  몹시 피곤한 상태에서 봤음에도, 거기다 <에이리언>은 어릴 적 어디선가 본 기억조차 끈적한 느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메테우스>에 꽤 만족했다. 사실 <에이리언>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소재가 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에이리언>의 (완벽한) 프리퀄로 해석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여튼, 2090년대의 우주 탐험이라는 설정에 걸맞은 비주얼도 비주얼이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보는 내내 영화가 역으로 던졌던 질문들이 맴돌았다. 태초부터는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것을 창조하고 생산하고 있으며, 심지어 생명의 연장이나 복제와 같은, 어쩌면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근원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을 콤플렉스처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영화 <프로메테우스>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미 많은 가설이 제기되어 왔지만 이 영화에는 누군가에 의해 인간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관점과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일부로부터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혼재한다. 영화의 서두에서 젊은 ‘엔지니어’는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는데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데, 이는 각본을 담당한 데이먼 린드로프가 한 인터뷰에서도 밝힌 것처럼 기독교적인 관점이 아닌 신들 자체 혹은 그들의 일부를 희생해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여러 신화에서 착안한 것 같다. 복잡하게도 영화 자체는 어떤 관점도 부정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다. 기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류의 기원을 위해 우주선에 몸을 싣고 있는 그들의 딜레마는 어떠했을까. 동시에 절대 영역의 신이 아닌 외계의 고등 생물체로부터 자신들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은 신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절대 영역이 ‘넘볼 수 있는’ 범위로 들어오고 기술의 발달로 그들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게 한다. 광속으로 날아가도 2여 년간 잠들어 있어야 하는 긴 여행 끝에 무엇을 마주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보다 큰 호기심으로 잊혀진 듯 하다. 인간의 호기심은 그래서 대단하고 무섭다.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인간의 모습이야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제목과 그들이 탄 우주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들고 불을 준 신의 모습과 동시에 탐구에 대한 갈망, 금기를 넘어선 호기심, 그리고 이로 인한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영화는 또한 인간과 그들의 창조자 혹은 기원과의 관계를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을 집어 넣으면서 인간을 피조물인 동시에 창조자의 위치로 나타낸다. 여느 영화의 수동적인 로봇과는 달리 ‘데이빗’은 어느 정도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데, 로봇인 그가 인간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자신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던졌을 때 돌아오는 인간의 답은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다. 이 때 그간 (다른 영화나 텍스트를 통해 보여졌던) 인간의 우쭐거림보다는,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는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불안과 공허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인간의 기원 역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것에 답을 구하고 설명을 추가하며 복잡함을 단순함으로 혹은 더욱 복잡하게 풀어가던 사람들에게 극도의 단순함으로 말문이 막히게 한다. 이 영화가 좀 더 단순한 SF 액션 영화였다면, 고도로 발전된 미래 사회나 우주에서의 전투 장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의 비주얼은 필요한 정도의 세심함을 기울이면서도 절제되어있다. <에이리언>의 징그러운 액션들을 예상한 나의 기대를 뒤엎고 도리어 묵직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러한 질문들을 영화로 끌어낸 감독과 제작진에 경외감마저 든다. 인간이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엘리자베스가 이제 와서 인간을 왜 파괴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또 다시 우주선에 오르는 것을 보며 인간이 품고 사는 호기심이라는 독 혹은 약에 괜히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게 된다. *** 제목: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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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 (Snow White And The Huntsman, 2012)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 (Snow White And The Huntsman, 2012) – 백설공주를 차용한 새로운 판타지  flyingneko.egloos.com/3848193  ‘백설공주’를 소재로 한 영화가 올 상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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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2012)

은교(2012) – 추악함과 아름다움의 사이 http://flyingneko.egloos.com/3836194 시인 이적요는 큰 주택에 오늘 하루도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예전만큼 시상이 떠오르지도, 감흥도 없이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늘 해오던 일인 독서를 하고 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그의 표정에는 묘한 긴장감이 보이는데, 그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인지 그의 문하생인 서지우는 늘 절절 매며 그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다. 서지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음에도 청소며 빨래, 요리를 도맡아 한다. 그러던 그들 앞에 여고생 은교가 나타난다. 제멋대로 이적요의 집 앞마당에 들어와 낮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등장으로 이들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축 처진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던 노인 이적요는 활기를 띈 젊은이가 되어 상상으로 은교를 탐한다. 그리고 은교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원고지에 써 내려간다. 여고생 은교는 역시 알게 모르게 욕망을 품고 표출한다. 그녀의 치마와 셔츠는 점점 짧아지고 그의 곁에서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돈다. 그들 사이에서 서지우는 그들의 욕망을 이용하며 위태롭게 서있다. 욕망이란 말로 표현을 못한다 뿐이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한다. 이러한 욕망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어 모습을 드러낼 때 아름답다고들 한다. 그러나 내재된 욕망이 절제와 인내, 갈등이 없이 그대로 표출되었을 때 추악함에 가까워진다. 싱그러운 봄의 내음과 여름의 초록마저 느껴지던 이적요의 상상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지만, 절제를 잃은 순간 술과 벌레들에 둘러 쌓인 이적요의 육체만큼이나 썩어간다. 늙음과 젊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지만, 정작 스스로의 욕망을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성과 감정,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적요는 결국 무너진다. 욕망이 마음과 생각 속에서 존재할 때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은밀하고 극적이기에 더 쾌감을 느낀다. 이적요와 서지우, 은교의 욕망은 은교의 치마 길이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질투, 그리고 근원적인 외로움이 끈적하게 얽히고설키다 결국 하나 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파국으로 이르는 추악한 비극은 그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은 참 외로웠다. *** 제목: 은교(2012) 연출: 정지우 각본: 정지우 / 원작: 박범신 출연: 박해일(이적요), 김무열(서지우), 김고은(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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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012) – 침묵 속에 갇힌 그녀의 외로움에 대해  flyingneko.egloos.com/3843468  매사가 불만인 그녀의 곁에서 말 한 마디 마음을 편하게 하지 못하는 남자. 믹서기나 청소기가 돌지 않으면 그녀의 불평 불만이 빼곡히 시공간을 메운다. 그런 그녀에 그는 귀를 막고 마음을 닫는다. 짜증이 섞이고 한숨만 늘어간다.모든 것이 아름답던 연애 시절과는 참 다른, 불편한 일상이 되어버린 그들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한 일상이 어느 샌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투덜거리는 것이 당연하고, 그걸 그가 짜증스럽게 들어주는 척하며 참는 것도 당연하게 된다. 그녀가 왜 그렇게 불평을 늘어놓고 투덜거리는지, ‘왜’라는 질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한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사건들에 당연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며 그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는 걸까. 하긴, 하루하루의 전쟁처럼 치르고 나면 호기심마저 사치가 되어버린다. 당연하게, 그러려니 넘어가는 것이 가장 속편하고 힘이 덜 든다. 그런 모습에 비교해보면, 그녀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불만스럽다. 사람들이 간과하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토를 단다. 그런 그녀는 말이 많고 불평이 가득한 게 당연하다. 그래서 그녀는 외롭다. 외로움에 더 많은 말을 내뱉고, 그런 그녀에게서 모두들 거리를 둔다. 말을 할수록 그녀는 더욱 외롭고, 그녀의 주변은 점점 더 지쳐간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고 웃으면 웃었지 눈물이 날 줄은 몰랐다. 카사노바 류승룡과 임수정의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을 듣고 있자면 대사를 외우는 것은 고사하고 숨은 언제 쉬나, 그런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다가 이내 킥킥대며 웃기 일쑤였다. 특히 류승룡. 고뇌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풀나풀 걸어가는 모습하며, 간지럽다 못해 느끼한 대사들을 태연하게 내뱉던 그가 돌연 ‘물이 무서워요’라며 바르르 떠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가 없었다면 진지함과 웃음 사이에서 영화가 뒤뚱거렸을 것 같다는 걱정마저 스치고 지나간다. 웃다가 문득, 그녀의 외로움이 짠하게 다가온다. <화양연화>의 대사를 읊으며 연기인지 사랑인지 모를 그의 태도에 그녀가 흔들린다. 반복되던 일상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그녀에게 찾아온 그 순간은 말 그대로 다시 찾아온 ‘화양연화’ 일지도 모른다. 설레면서도 잡을 수 없어 안타까운 그 마음이 흔들리는 눈빛 만큼이나 위태롭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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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록영화탐구생활

다크 섀도우 (Dark Shadows, 2012)

다크 섀도우 (Dark Shadows, 2012) – 딱, 팀 버튼의 오락 영화 http://flyingneko.egloos.com/3840418 ‘팀 버튼 같다’ – 팀 버튼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있자면, 장르도 분위기도 다양해서 그의 작품은 이러하다는 표현을 위한 적절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팀 버튼 같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고민을 아주 간단하게 해결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역시 참으로 ‘팀 버튼’ 스럽다. 조니 뎁이 나왔던 영화라고 기억나는 영화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리비언의 해적>이니 이 정도면 그의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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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The Avengers, 2012)

어벤져스 (The Avengers, 2012) – Marvel의 Marvel-ous! flyingneko.egloos.com/3837470  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을 좋아한다. 아주 많이. <아이언맨> 시리즈야 나올 때마다 열광하며 극장에서도 여러 번 봤다. (상술이라며 안 넘어 갈거라고 트릴로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블루레이를 지르고 말았다…) 아이언맨의 첫 시리즈 마지막에 닉 퓨리가 등장했을 때도, 아이언맨이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깔개(…)로 쓰고 토르의 ‘뮤뮤’가 사막 한 가운데 꽂혀있을 때도 오직 아이언맨만을 갈구하고 <어벤져스> 역시 아이언맨이 나오니 기대하고 궁금해했다. 그래도 액션과 블록버스터를 찾는 취향 덕에 <토르>며 <캡틴 아메리카>가 개봉할 때마다 극장을 찾았다. 그때마다 증폭되는 궁금증. 대체 마블은 어쩌려고 5년 동안 5편의 영화에 떡밥을 깔고 던져두는 걸까. 뚜껑을 열어보니 대성공이다. <어벤져스>는 각 시리즈물로 지구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히어로들 어느 하나에 치중되지 않고 적절히 균형을 잡는다. 불러모으는 것부터 싸우는 장면까지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몸 좋은 캡틴 아메리카는 착한 마음과 지혜로 리더가 되고, 머리 좋은 배너 박사와 토니 스타크는 큐브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시에, 건방진 아이언맨과 토르가 싸우다가 캡틴 아메리카의 중재로 비행선에 함께 타는가 하면, 토르와 헐크는 외계 괴수에 맞서 괴력을 발휘하며 협공 작전을 펼친다. 헐크도 들지 못하는 ‘묠니르’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로 막아내는 것부터 지적 능력과 전투력을 한몸에 갖춘 호크아이의 머리를 후려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블랙 위도우까지, 여섯 혹은 닉 퓨리까지 합하면 일곱 히어로들 간 가위바위보 식의 견제와 균형에 감탄과 재미가 더해간다. 이랬던 그들이.. 이들은 처음부터 팀이 되지 않는다. 지구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도 한데 불러모은 히어로들은 티격태격하기 바쁘다. 설상가상으로 헐크는 알몸으로, 토르는 헐크를 가둘 목적으로 만든 초강력 케이지에 갇혀 떨어지고 난장판의장본인 로키는 뻔뻔하게 도주하고.. 어벤져스를 한 곳에 모으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콜슨 요원에 의해 결국 힘을 모아 포털에서 쏟아져 나오는 적들과 맞서고 로키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중간중간 깨알 같이 쏟아지는 토니 스타크의 유머에 더해 소심한 헐크의 유쾌한 복수와 토르의 여전한 해맑음 등등은 히어로들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른다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에 유머를 더해 극장 안을 웃음 바다로 만든다. (아주아주 약간의 아쉬운 점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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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블랙 (The Woman In Black, 2012)

우먼 인 블랙 (The Woman In Black, 2012) – 죽음의 순환 속 절제된 공포와 긴장감 http://flyingneko.egloos.com/3823572 사람은 무엇에 공포를 느낄까? 공포 영화의 수만큼이나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방법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스크림(Scream)>이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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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 (Zodiac, 2007)

조디악 (Zodiac, 2007)  – 잊혀져 가는 진실을 쫓는 이들  flyingneko.egloos.com/3823014  <조디악>의 사건은 1969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의 신문사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The San Francisco Examiner), 발레호 타임즈헤럴드(Vallejo Times Herald) 앞으로 배달된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다. 편지에는 자신을 조디악이라고 하며, 1968년과 69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세부 사항들이 적혀 있다. 범인의 요청대로 신문에 암호문 같은 그의 편지 일부가 게재되며 경찰은 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1969년 10월 13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배달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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